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미니카 공화국 (문단 편집) === 근현대 === [[1795년]], 바젤 조약에 따라, 동부도 [[프랑스]]에 넘어갔다. [[1804년]] [[아이티]]가 독립한 이후에도 [[프랑스군]]은 동부에 주둔해 있었다. [[스페인]]은 [[영국]]과 합세하여 도미니카를 탈환했고, [[1809년]], 다시 스페인 치하에 들어갔다. 그 후 [[1821년]], [[스페인 아이티 공화국]]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바로 아이티가 이 곳을 침략해 지배하였다. 이후 22년간의 아이티 지배를 받고 [[1844년]] 독립하였다.(도미니카 제1공화국) 그리고 [[1856년]]까지 아이티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벌였다. 이러한 역사 덕분에 이 나라는 아이티 하면 이를 갈며 아이티와의 경제력, 국력이 역전된 지금은 [[도미니카인]]들이 대놓고 [[아이티인]]들을 짐승 취급하며 무시한다. 이후 [[1930년]]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선 대통령이 50번 바뀌고 쿠데타가 30번 일어나는 대혼란이 일어났다. 도미니카 공화국 대통령을 5차례나 지낸 독재자 부에나벤추라 바에스는 나라를 미국에 합병시키려고 애를 썼던 인물로, 1849~1853년 임기 중인 1850년 미국에 합병 요청을 했으나 실패했다. 1856년 재집권하였으나 부패했다며 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자 스페인을 불러들여 [[1861년]]부터 [[1865년]]까지 스페인이 도미니카를 재점령하기도 했다. 스페인이 나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재독립(도미니카 제2공화국)하자 3번째로 대통령이 되었다가 1년 만에 쫓겨났다가 1868년 4번째로 집권한 이듬해 드디어 [[51번째 주#s-3.4|전쟁으로 피폐해지고 거액의 부채를 지고 있는 도미니카를 미국이 합방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하였다.]] 당시 미국 대통령 [[율리시스 그랜트]] 또한 도미니카 합병론에 동조하였으나, 미 상원에서 찬반 28표로 당시 상원의석 74석 중 합방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하여 도미니카 병합은 실현되지 못하였다. 그 외, [[미국]]이 [[1916년]]부터 [[1924년]]까지 점령하기도 하였다. 이후 다시 독립(도미니카 제3공화국)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